(전쟁) 제2차 세계대전, 또 다시 비극
제 1차 세계대전이 종전 된 이후에도 나라간의 전쟁은 간간히 일어났다. 하지만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또 다시 거대한 전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당시 독일의 지배자였던 히틀러는 파시즘을 처음 만든 무솔리니를 무척 존경했었는데 히틀러는 이런 무솔리니와 가까워지고 싶어했다. 그러던 와중에 기회가 생긴 것이다. 바로 에스파냐 내전이다. 이 내전은 에스파냐에 새로 들어선 공화국 정부에 반대하며 파시스트인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일으킨 거였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프랑코 장군을 지원했다. 파시즘과 나치즘이 이 전쟁을 계기로 가까워진 것이다.
이 내전은 여러 국가가 개입했기 때문에 작은 세계대전이라고도 불린다. 중일전쟁이 터지기 한 해 전인 1936년 2월, 에스파냐에 좌파 정부가 들어섰다. 이 정부는 대대적인 새혁을 추진했다. 그러자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파시즘 세력들이 반발했다. 이들은 7월에 쿠데타를 일으켰다. 영국과 프랑스는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망설였다. 파시즘을 꺾으려면 좌파 정부를 지원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공산주의 세력을 지원하는게 되버리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에스파냐 내전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소련만이 좌파 정부에 무기를 지원했다. 코민테른도 의용군을 파견해 좌파정부를 도왔다. 프랑코 군대는 독일과 이탈리아로부터 전적인 지원을 받았어. 누가 더 강할까? 1939년 1월 프랑코의 군대는 수도 바르셀로나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이쯤되면 영국과 프랑스도 프랑코 정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에스파냐 내전은 파시즘의 승리로 끝났다. 에스파냐 내전이 진행될 때 독일과 이탈리아는 ‘베를린-로마 추축’을 체결했다. 1937년에는 일본이 독일과 협정을 맺으면서 세 파시즘 국가들의 ‘3국 추축’이 만들어졌다. 3국 추축 가운데 이탈리아의 군사력으로 가장 떨어졌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독일은 유럽에서 침략전쟁을 벌이며 영토를 넓히고 있었다. 1937년 일본은 중일전쟁을 시작했다. 독일은 1938년 오스트리아를 합병했고, 이듬해 3월 체코슬로비키아까지 흡수해버렸다. 독일은 혹시 소련이 방해할까봐 ‘우리 두 나라는 서로 침략하지 말자’며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다. 세계대전을 치르기 위한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 1939년 9월 1일 새벽 5시 독일은 폴란드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어 하루 뒤에는 폴란드를 전격적으로 침략했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원자 폭탄의 공식을 만들지 않았다면 전쟁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물론 내가 원자폭탄의 공식을 만들었다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이다. 원자폭탄은 세계대전의 판도를 확 바뀌어놨다. 그런 변수가 없었다면 독일과 일본은 동서양의 정복자가 됐을 수도 있다.
아무리 중국이라고 해도 일본을 감당할 힘이 없었다. 중국은 전에 한 번 일본에게 무참하게 밀렸던 적이있다. 중국은 절대로 일본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이 어느순간엔가 머릿 속, 무의식 속에 각인돼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