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세계대전 이후.. 각 회담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며칠 동안은 짧은 평화가 찾아왔다. 전쟁의 흉터를 복구하는데 각 나라들은 힘썼고, 많은 사상자가 나왔으므로 그들을 위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죽은 군인은 훌륭한 희생이라는 생각이 그 시대 사람들의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1943년 11월 미국, 영국, 중국의 세 정상이 이집트 카이로에서 회담을 가졌다. 이 ‘카이로 회담’에서 처음 한국의 독립이 논의됐다. 세 정상은 “일본은 식민지를 모두 내놓고, 한국의 독립절차를 밟는다”고 합의했다. 한 달 뒤인 1943년 12월 이란 테헤란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정상들이 모였다. 이번 회담에서는 중국이 빠지고 소련이 참가했다.
이때 루스벨트와 처칠, 스탈린이 회담에 나왔다. 이 테헤란 회담에서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의결했다. 1945년 2월 테헤란 회담의 세 정상들이 우크라이나의 얄타에서 다시 모였다. 이 얄타회담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 독일을, 미, 영, 프 소 4개국이 분할통치하기로 했다. 소련이 참전하기로 결의한 게 바로 이 회담에서다. 같은 해 7월 미국, 영국, 소련의 정상회담이 톡일 포츠담에서 열렸다. 트루먼, 애틀리, 스탈린이 참석했다. 이 ‘포츠담 회담’에서는 일본의 항복과 카이로회담에서 의결한 내용을 이행할 것을 결의했다. 전쟁이 끝난 후인 1945년 12월 미국 영국, 소련의 외상(외교부 장관)들이 소련 모스크바에서 모였다. 세 명의 외상이 모였기 때문에 ‘모스크라 3상회의’라고 한다. 이 회담에서는 한국의 신탁통치가 결정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국제연맹이란 기구가 만들어졌고 이번에도 국제기구가 만들어졌는데 바로 국제연합(UN)이다 국제연합은 총회보다 안전보장이사회가 더 중요한 기구다. 안전보장이사회받침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대가 바로 UN군이고 안전보장이사회는 여러 개의 바상임이사국이 있지만 실제 권한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 등 5개의 영구상임이사국에 집중돼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1차 대전이 끝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전범국가의 식민지를 모두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의 식민지는 모두 독립을 얻게 됐다.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것도 이 조치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아직 완전한 독립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 모스크바 3상회의 때 내린 결정대로 소련의 신탁통치가 시작됀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가 이어 시작된 것이다. 이 때문에 한반도는 동서냉전의 갈등이 폭발하는 장소가 되고 말았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영토조정을 했을 때는 연합국의 식민지는 독립시켜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연합국의 식민지들도 모두 독립시켜줬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대전은 앞으로도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 하지만 다음 세계대전 때는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으므로 그것을 모르는 국가만 없다면 평화로울 것이다.”라고 말이다. 이 위험에 해당되는 나라는 우리들 생각으로는 딱 한 곳 밖에 없다, 바로 북한이다.
제3차 세계대전은 각 나라마다 미사일을 날리고 전차와 탱크로 무장한 전력, 그리고 어마어마한 화력을 가진 핵무기들로 멸망하는 나라들이 생긴다. 핵미사일은 인류가 만들어낸 최악의 무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