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근현대의 시작! 흥선 대원군의 등장 직전
우리들은 시간이 지나서 생긴 것들을 ‘문명’이라고 부르고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들을 위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기록해놓은 것을 역사라고 한다.
우리들은 다시 한 번 역사라는 바다에 몸을 던진다. 평소와 같았다면 비치볼도 가지고 와서 마음껏 놀았겠지만 오늘은 물안경을 끼고서 심오한 곳까지 들어가 보자. 우리가 알아볼 것은 바로 가까운 역사, 근현대사를 알아볼 것이다.
우선 대원군이 집권한 1863년 무렵, 아직 나라가 조선일 때 조선은 격변의 시기에 놓여 있었다. 사회경제적으로는 임옥으로 상징되는 신흥 상인층과 함께 거대한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들이 새롭게 출현했다. 임상옥은 청과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아올린 부자였으며 회계를 맡아보는 직원만 해도 70명이 넘을 정도의 기업을 형성했던 인물이다. 그의 집안 규모는 평안감사, 의주부사 등 고위 관리 일행 700명이 한순간에 몰려왔을 때도 일인당 한 상씩 차려줄 정도였다. 특권 양반층을 주로 소유했던 대토지도 18세기 말부터는 농민 출신뿐만 아니라 노비층에서도 소유했다. 19세기 중엽 진주 지역의 경우에는 인구의 16퍼센트에 불과한 지주층이 전체 토지의 16퍼센트를 소유하고 인구의 63퍼센트에 이르는 농민을 18퍼센트 정도의 토지만 소유할 정도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됐다. 한편 대토지 소유자는 이 시기에 와서 면화, 미곡 등을 상품으로 파는 상업적 농업경영자로 탈바꿈했다. 봉건적 경제체제가 밑바닥에서부터 해체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제 변화와 함께 봉건적 정치체제의 부패는 극에 달했다. 밑의 백성들은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 백성들이 널렸는데, 정작 정치인들이라는 사람들은 자기의 배를 불리기에 바빴고, 술과 여흥에 빠져서 방탕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순조 이후 실권을 장악한 안동 김씨 세도정권은 매관매직을 일삼고 세금을 대폭올리는 등 민중의 이익에 철저히 반하는 부패정치를 일삼았다. 거액을 내고 벼슬을 산 지방관들은 본전을 뽑기 위해서라도 농민들을 철저히 쥐어짰다. 다 마른 풀을 쥐어짜서 즙을 만들어낸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백성들은 얼마나 힘들까? 자기 집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산으로 올라가서 나물과 야생열매를 찾아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이러는 사람들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많아졌다. 어떤 나라든지 망조가 들기 시작하면 가장 위에서부터 타락하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백성들은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한 혁명가를 찾기 시작한다. 이 시대에도 그런 혁명을 계획하는 사람이 있었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안동 김씨들의 매관매직은 이미 한 달조차 지나지 않아서 반 이상이 가득 채워졌고, 백성들에게는 흥선 대원군이라는 이름 모르는 영웅이 등장한 것이다. 마치 영화 한 편과 같이 말이다.” 라고 말이다. 흥선 대원군이 권력을 잡기 시작하면서 백성들은 다시 평안한 삶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흔들리는 것이 있었다.
흥선 대원군이라는 인물은 조선시대의 마지막 개혁을 추진한 사람이다. 이 후에는 얼마 안가서 조선도 제국주의에 물들게 된다. 조선시대의 안동 김씨들은 백성들에게는 원수와 같은 존재였을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지금도 이런 일들이 어디선가 반복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