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조선 최초) 최초의 이발소와 최초의 호텔,1

MasterJo 2017. 2. 10. 18:59

우리들은 머리가 기르면 흔히들 헤어숍에 간다. 머리를 다듬고 커트를 하고 남들이 볼 때 우와하게 될 만한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런다 해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을 하고는 눈물을 보일 때가 없잖아 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이발관은 누가 만들었을까? 바로 유양호라는 사람이 만들었다. 그 사람이 열었던 이발소는 동흥이발소였다. 1901년 인사동에서 개업했다. 1895년 반발령이 최소돼 머리모양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사실 조선에서는 이발소가 있을 리 없었다.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절대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유교 원칙에 따라 머리털을 깎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민비 시해보다 단발령이 을미의병 봉기의 터 큰 원인이기도 했다. 그런 조선에서 머리털을 함부로 깎는 이발소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단발령이 철회된 뒤에는 한번 깎은 머리에 상투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이유는 바로 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발한 머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상투를 자른 머리는 지저분하기도 했다. 그래서였는지 동흥이발소는 금세 인기를 끌었다. 인천에까지 소문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동흥이발소에서는 상투를 틀어주는 일도 했다. 단발령이 철회된 뒤 상투를 다시 틀려 해도 윗머리가 없어 못짜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단발령 때문에 생겨났던 이발소에서 상투를 틀어주기도 하고,머리를 깎아주기도 하는 희한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뭐 헤어숍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럼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과 커피숍은 어쨌을까? 나라의 존망이 위태롭던 시기였지만 어쨌든 서구로부터 몰밀 듯 들어오는 서양 문물은 이땅의 의식주 생활문화에 충격을 주었다. 침략의도가 분명했던 만큼 그에 대한 저항감 역시 강했다. 그러나 새로운 문물을 주는 편의성으로 박래품에 대한 대중적 인기는 높아져갔다. 1886한성주보4호에 실린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광고인 독일상사 세창양행 광고는 당시의 사회적 풍경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조선에 진출한독일상사가 자명종, 램프, 성냥 등을 신문에 광고하며 장사할 정도로 서구 물품이 조선 시장에 보급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서양 물품 중 상류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던 음료는 커피였다.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 베베르의 처형이었던 프랑스계 독일 여성 손탁은 1896년에서 1898년 사이에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손탁 호텔을 지었다. 고종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그녀는 경운궁 건너편에 있는 집과 대지를 하사받자 집을 허물고 그 터에 서양식 2층 건물을 지어 호텔을 경영했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서양문물은 말 그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 뿐이었다. 조선은 여지적 전기를 이용한 기계를 다뤄본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말이다. 조선은 여지적 많은 것들을 자연에서 얻어서 활용했다.

 

조선시대에는 줄과 나무, , 철 등을 이용해서 적들과 싸웠다면 이제 황제국으로 변했을 당시에는 슬슬 기계를 익혀가게 되었다. 일본은 조선보다 더 빠르게 서양문물을 익혔으므로 열강이라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꼽사리 껴서 오른 것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