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조종당한 김일성
우리나라는 현재 분립상태이며 북한과 남한으로 나뉘어져 있는 상태이다. 그 이유는 6.25 전쟁이라는 뼈 아픈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민족이 서로 싸우고 어제는 친구였던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는 잔인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1945년 당시 북한의 우두머리는 김일성이었다. 1945년 10월 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소련군 환영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훗날 김일성 장군 환영대회라고도 불린 대중집회였다. 7만 명이 참여했다고도 하고 혹자는 30만이 운집했다고도 한다. 이 자리에서 ‘김일성 장군’이 북한 대중 앞에 첫 선을 보였다. “힘있는 자는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새 민주 조선을 건설하자는 김일성의 유명한 연설이 이 자리에서 나왔다
그런데 연설 내용보다 대중을 더 놀라게 했던 것은 김일성 장군의 너무나 젊은 모습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아니라 30대의 ‘중국요리집 웨이터처럼 머리를 바짝 치겨 깎은’ 젊은이였기 때문이다. 대회장에는 작은 소란들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것이 가짜 김일성론을 유포시키는 한 요인이되기도 했다. 그 당시 김일성은 이를 잠재우기 위해 기자들을 데리고 만경대 그의 생가를 방문하고 조부모 등 친인척을 소개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물론 ‘김일성 가짜론’은 국내외 학계의 대다수 전문가들에 의해 근거 없는 일방적 주장으로 치부되고 있다. 반공반북인사들에 의한 의도적 왜곡이라는 것이다. 저명한 북한연구가 서대숙 교수는 “김일성의 이름과 정체에 대해서는 심각한 논쟁이 있었으나 여기서는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있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북한 주석 김일성은 만주에서 중국 공산당 항일유격대 세력에 가담했던 바로 그 김일성이다. 심지어 빨치산들 스스로 찍었다가 일제에 노획된 사진 가운데에는 그의 유격대원들을 보여주고 특히 그를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있다”라고 말했다. 곧 젊은 김일성은 가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양한 증거를 통해 ‘가짜 김일성론’의 근거 없음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독립운동 사실을 넘어서 극단적으로 독립운동사에서의 역할을 과장하며 김일성의 행적을 신화화 하는 북측의 편향은 또 다른 문제임이 자명하다. 북한에는 김씨 일가의 행적을 신격화 하는 것들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언제나 말하지만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이 행동들을 자행하는 것을 보니 얼마나 오만한지 모르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30대 초반의 젊은 김일성이 북한에 도착한지 1년이 채 못되어 북한의 1인자로 부각된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소련 군정이 북한에 진주하기 전에 이미 그를 자신들의 점령 정책을 뒷받침해줄 정치적 대리인으로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허수아비 왕이라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허수아비로 세워진 김일성은 그런 줄도 모르고 동족들을 쏴죽여야만 했으니 얼마나 불쌍한가.”라고 말이다. 사람이 사람을 조종한다는 것은 조종당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굴욕감이다. 이미 김일성은 북한에 온 순간부터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다.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잠시 멈추게 되면서 소련이 한반도를 전부 먹어버리는 원대한 꿈은 그 사이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아직도 휴전 상태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긴장 중에 놓여있다. 조종당한 김일성은 지금은 죽고 나서 없지만 죽고 나서라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저승에서라도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