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천로역정: 세속현자의 유혹

MasterJo 2017. 3. 22. 19:22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들이 있다. 우선 적으로는 돈이 가장 필요하다, 그리고 때때로는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쾌락도 필요하다. 또 때로는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애인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깊히 빠져있다면 이미 당신의 눈에는 진흙이 묻어있는 것과 다름 없다.


  크리스천은 헬프라는 사나이에게 늪에서 끌어올려진 후 진흙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적당한 곳을 찾아서 누웠다. 그리고는 피곤했는지 깊은 잠에 빠졌는데 집으로 돌아간 유순한을 보았다. 도착 소식을 듣고 이웃들이 찾아왔는데 더러는 과감하게 돌아왔으니 얼마나 현명하냐고 했고, 애당초 크리스천과 더불어 그처럼 위험천만한 여행을 시작한 게 바보짓이었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편 비겁하게 처신했다며 유순한을 조롱하기도 했다. “일단 출발했으면 끝을 봐야지 조금 힘든 일을 만났다고 금방 쪼르르 돌아오다니, 나 같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야!” 당황스럽고 뿌루퉁한 나머지 유순한은 잠시 몸을 사렸다. 하지만 얼마 쯤 자신감을 회복하고 다른 이들 틈에 끼어서 그 자리에 없는 가엾은 크리스천을 비웃어댔다. 잠에서 깨어난 후 이제 홀로 남은 크리스천은 가던 길을 계속 걸어야만 했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벌판을 가로질러 다가오는게 보였다. 마침내 크리스천과 얼굴을 마주한 사람은 ‘세속현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세상이치 시’라는 곳이고 크리스천이 가려고 하는 곳과 아주 가까운 대단히 번화한 도시라고 했다. 세속현자는 크리스천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멸망의도시를 버리고 멀리 떠난 남자가 있다는 소문은 이미 근처에 두루 퍼졌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의 지저분한 차림새를 보고 쉴 새 없이 토해내는 한숨과 신음 소리를 듣는 순간, 세속현자는 눈앞의 상대가 바로 풍문의 주인공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곧 바로 말을 걸었다. “어디로 가시오? 어쩌다가 이렇게 형편없는 몰골을 하게 되었소? 등에 짊어진 커다란 보따리는 또 뭐요?”이 말에 크리스천은 대답했다. “실은 저도 이렇게 무거운 짐은 난생처음입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셨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이쪽으로 계속 가다보면 나온다는 어린양의 문으로 갑니다. 그리 들어가면 이 육중한 짐을 벗어버릴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라고 말이다. 그러자 세속현자는 “결혼은 하셨소? 자식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등짐에 하도 짓눌려서 식구들과 있어도 남들처럼 즐겁지가 않았어요, 이제는 의지가지없는 사내가 된 기분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잠시 동안 얼굴을 마주 했다. 크리스천은 세속현자라는 사람이 누군지는 몰랐으나, 그의 이름 뒤에 현자라는 단어가 붙었으니 잘하면 자신의 짐을 떨쳐버릴 방법을 알려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고대 아테네 철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순간의 유혹에 휘둘리지 마라 앞으로는 더 큰 것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한다면 더 큰 것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이 세속현자라는 인물은 이름과 같이 세상의 이치를 따라가는 현자이다. 이 사람의 말은 어린양의 문으로 가는 크리스천을 흔들리게 만들 것이다. 


  사람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밑도 끝도 없이 오해와 편견을 가지게 된다. 그러고는 벗어났던 낙담의 늪 속을 자기 발로 자기가 들어가는 참사가 일어나게 된다. 결국에는 유혹을 떨쳐낼 정도의 정신력과 각오가 없다는 절대로 그 죄의 유혹을 밀쳐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