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흑인들의 자유,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우리들은 항상 노력하고 수고해야지만 먹고 살 수 있고, 자신의 위대함을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그저 오늘 날의 사회를 탓할 뿐이고 노력한 사람은 사회의 최정상에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나눈다.
1963년이 저물 무렵, 백만 명 이상이 참여한 시위를 통해서 흑인들의 상황에 어떤 현실적인 개선이 있었느냐는 회의적인 의견들이 많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1964년 말까지 흑인들의 시민권운동은 여러 차례에 걸려서 큰 승리를 거우었으며 이로 인해서 비관적인 주장은 수그러들었다.,
1963년과 1964년 두 해는 시민권운동에 있어서 역사적인 전환점이었다. 지난 세기를 돌아보아도 두 해 동안 이루어진 흑인들의 상황변화에 비교할 만한 사건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비관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도 콩코드와 버밍햄에서 일어난 사건이 전 세계에 여파를 미쳤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흑인사회에는 낙관적인 분위가 충만했으며 ‘타협’과 ‘후퇴’라는 단어는 불경스럽고 유독한 것으로 여겼다. 흑인의 혁명은 더 이상 참고 견딜 수 없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탄생했다는 점에서 참된 혁명이었다. 흑인들이 지닌 해방의 결단과 정의에 대한 열망은 거스를 수 없는 힘으로 구체화되었으며 타협이나 후퇴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자유를 되찾은 흑인들은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을 수도 있었고, 이제는 버스의 맨 뒷 자석에 앉지 않아도 되었고, 무엇보다 백인들에게 더 이상 굴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환희를 할 정도 였다. 거리에 있는 흑인들 중에서는 마틴 루터 킹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는 백인들 중에서도 그를 위대한 인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수도 없이 많았다. 그동안 억압당했던 흑인들은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렸고, 마치 나라를 잃었던 시민들이 나라를 되찾은 것 같은 분위기가 계속되면서 거리는 축제 분위기와 함성 소리로 가득했다. 이제는 그 어떤 백인들도 흑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들 역시 가게에서는 손님이고, 거리에서는 우리와 같은 똑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미국 전역에 마치 바이러스처럼 퍼졌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마틴 루터 킹을 중심으로 모인 그동안 억압당하고 억울한 마음을 한 가득 가지고 있었던 모든 흑인들이 힘써준 덕분이다. 사람이라는 생물은 인종, 피부색을 무시하고 여러 명이서 모였을 때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사람들이 모여서 생기는 그 에너지는 못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사람 한 명의 힘은 약하지만 사람 100명의 힘은 강하고, 1000명의 힘은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다. 흑인과 백인의 사이에서 일어난 증오와 갈등, 고집은 400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들이 사라졌으니 이제는 새장 안에 있던 새가 하늘을 높게 날아오를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흑인들에게 악심을 품고 있는 백인들이 남아 있었으니 곧 이들은 마틴 루터 킹의 목숨을 노리게 됐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렇게 말한다. “하늘을 나는 새는 새장 안의 새의 고통을 모르고, 새장 안의 새는 하늘을 나는 새의 고통을 모른다.” 라고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어느 쪽이든 고통은 따르게 되어있다. 전에도 말했듯이 백인들 중에서 가난한 사람은 흑인과 똑같이 차별을 받기도 했다.
사람은 매우 영리한 동물이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 생각에 대한 폭이 넓어지고 행동범위도 넓어진다. 하지만 그 만큼 위험한 일들도 많이 생겨나게 되고 그로 인해서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큰 갈등이 수시로 발생한다. 흑백차별은 어떻게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긴 갈등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된 탓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