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감정조절법, 화, 그리고 당당함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수많은 감정들을 나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는 마찰이 없을 수가 없다. 자기와 의견이 반대되는 사람들, 자신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특히 더 마찰이 잘 일어난다.
우리는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내새워야만 할 때가 있다. 나의 의견을 당당하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내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과는 조심해야한다. 언제 말싸움이 일어날지 모른다. 말싸움을 넘어서게되면 몸싸움까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것이 사람이다. 어찌 보면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가치관, 자신의 의견 등을 다른 사람도 공감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것을 공감하지 않고 오히려 부정한다면 마치 건조한 나무가 가득한 산에 불씨가 옮겨 붙는 셈이 되어버린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는 언제나 언어와 말이 존재하고 그것으로 대인관계가 원할 해지기도 하고 오히려 복잡하게 꼬이기도 한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자신이 화가 난다고 해서 남을 막대 한다면 그것은 단지 ‘무례한 사람’이다. 우리는 조금 흥분을 가라앉히고 어떤 점에서 상대방이 공감할 수 없는지를 파악해야한다. 물론 화를 참는 것은 힘들다. 사람의 원시적인 감정인데다가 사람의 본능이기에 숨기기가 매우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참아내는 것이 엘리트이며 갑자기 화를 내는 자신을 보고 있는 상대방은 입장이 매우 불쾌할 것이다. 화를 내고 싶다면 잠시 화장실 같은 곳에서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잘 참았어’라고 위로를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도피 방법이다. 화라는 것은 우리들이 그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점을 꼭 숙지해두도록 하자. 아예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부정적인 면으로 보지 않고 단지 ‘충고해준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좋다. 물론 충고는 자기보다 한 수, 두 수 정도 더 앞에 있는 사람에게 받아야 정상이다. 자신과 같은 위치에서 하는 충고는 충고라기보다 그저 빈정대는 것처럼 보이는 면이 크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좋다. 어느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든지 먼저 화를 내는 쪽이 이미 진 상태이다. 이래서 인내심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인내심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내공이 쌓이는 것들 중 하나이다. 우리 안의 인내심이 끝을 보일 때 우리는 과감하게 그 상대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인내심에 끝이 보이는데도 계속 참는 것은 상대편에게 있어서는 그저 호구로 밖에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인내심이 많다면 참아라, 인내심이 없다면 당당하게 말해라, 당당하지 않을 주장을 내세울 바에는 차라리 묵념해라” 라고 말이다. 우리는 생각해야한다. 우리들이 지금 내세우는 주장이 과연 이치에 맞고 합당한 것인지 말이다. 이치에 맞지도 않고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합당하지 않는데 그런 주장을 내세워봐야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언제나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말하자 그것이 곧 자신의 또 다른 능력을 일깨워줄 것이다. 아직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막혀있다면 남들에게 당당하게 물어봐라 길을 걸을 대도 땅바닥이 아닌 앞을 보고 걸어라 남들이 화를 낼 때 나는 1초 2초 더 참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