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전쟁) 장미전쟁과 백년전쟁

MasterJo 2017. 5. 30. 18:00

전부터 입 아프게 꽤 여러 번 말했지만 전쟁은 언제나 역사와 함께했다. 전쟁으로 인해서 많은 역사가 생겼고, 나라도 생겼다. 대항해 시대 이후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식민지 정복 같은 작은 전쟁역시 빈번하게 일어났다.

 

서양에서는 많은 전쟁들이 있었는데, 그 전쟁들 중에서도 헤비급을 자랑하는 전쟁이 있었으니 바로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이다. 이 두 전쟁은 정말 오랜 세월 간 큰 전쟁을 계속해서 벌여왔다. 그 덕분에 주위 환경은 피폐하게 변했고, 주위에는 시체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릴 정도였다.

 

백년전쟁이 터지기 전에도 영국과 프랑스의 국경이 분명하지는 않았다 두 나라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유럽나라 대부분이 이슬람교 나라들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었지만 자기들끼리는 네 편과 내 편을 많이 따지지는 않았다. 한 명의 왕이 여러 나라의 왕을 겸하는 경우도 빈번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경은 별로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백년전쟁 이후 유럽 사람들은 국가라는 개념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모든 국민이 힘을 합쳐 영국을 몰아낸 프랑스가 그랬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때부터 우리가 프랑스인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제 일반 민중들에게 내 나라가 중요하다는 국가관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백년전쟁 후에도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서로 전쟁을 했다. 이런 전쟁은 대부분 종교 때문에 생겼다. 얼핏 보면 종교 전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집어삼키려는 정치 전쟁이었다. 모든 전쟁에 국가의 개념이 들어간 것이다. 영국 장미전쟁은 왕의 권력을 강화시킨 사건이기도 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지방영주와 귀족의 권력이 강했다. 마치 일본의 중앙귀족이 천황의 권력을 모두 가져간 것과 비슷하다. 200년 전 귀족들이 왕에게 권력을 모두 내놔!”라며 대헌장에 서명하게 했었다. 그러나 장미전쟁을 끝낸 헨리 7세 왕은 그 전까지의 힘없는 왕과 달랐다. 당시 왕이었던 헨리 7세는 장미전쟁을 치르면서 강한 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침 영국은 백년전쟁에 패하면서 왕보다 귀족이 더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헨리 7세는 왕권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의 노력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다음인 헨리 8세 왕은 영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이 될 수 있었다. 헨리 8세는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고 수도원을 해체해 버렸다. 로마 가톨릭에서 벗어나 영국국교회를 만들기도 했다. 영국에 절대왕정 시대를 연 헨리 8세의 이야기는 후에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우선 간략하게 정리를 하자면 백년전쟁은 프랑스와 영국이 국경문제로 벌인 전쟁이며, 장미전쟁은 전쟁 후 헨리 7세의 부단한 노력으로 헨리8 세가 절대왕정 시대를 열 수 있는 열쇠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귀족들이 왕의 권력을 모조리 빼앗아 가게 되면 분명이 부조리한 일이 생기게 될 것이고 그러면 혁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말이다. 귀족들이 왕의 권력을 빼앗으면 반드시 비리가 일어나게 되어있다. 인간이란 돈과 같은 물질에 아주아주 취약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돈에 대해서 아주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만큼 왕의 권력이 약해지면 귀족들이 부정부패를 저지를 일이 많아진다. 조심해야 한다. 왕은 언제나 자신의 권력을 동일한 위치에 두고 지켜내야 하며 힘이 강한 귀족들은 자신의 권력을 있는 그대로 만족하고 더 이상 부정과 부패를 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