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역사) 세조정치, 나라의 앞을 막는 장애물

MasterJo 2017. 6. 30. 17:03

늘 날 정치판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범죄는 무엇일까? 바로 비리이다. 이 비리라는 범죄는 인간의 권력욕이 만들어낸 범죄인데 주로 돈을 주고 권력을 사는 행위를 말한다. 마땅히 자신의 능력을 얻어야 하는 권력을 돈을 주고 구매를 해버리면 공정성이 무너지게 된다.

 

조선시대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던 것은 바로 세도정치이다. 조선의 역사를 쭉 훓어보면 세도정치가 본격화 되었던 시기에 백성들의 삶이 궁핍해졌다. 권력을 돈 주고 사는 매매까지 일어났으며 그 때문에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서 백성들의 피와 기름을 쪽쪽 빨아먹었던 것이다.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탕평정치가 끝을 맞이하게 되고 틈을 노린 세도정치가들이 다시 조정에서 판치기 시작했다.

 

영조와 정조가 추진한 탕평정치로 왕에게 다시 권력이 집중됐었는데, 문제는 권력의 핵심인 왕위를 계승한 순조가 11세의 어린 왕이었다는 것이다. 순조 즉위 후 약 4년간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영조의 두 번째 아내인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시작했다. (수렴청정: 나이가 어린 왕이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대신 정치를 하는 것) 정순왕후는 영조 때에 사도세자의 폐위를 주장했던 동생 김귀주를 비롯한 벽파와 뜻을 같이하고 있었으므로 수렴청정 기간 동안 정조 때의 집권 세력이었던 시파의 숙청을 주력했다. 후환이 될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인 것이다. 무너져 가는 사회의 질서를 지탱하기 위해 18011월 오가작통법을 다시 시행했으며 사교금압이라는 명분으로 신유사옥을 일으켜 천주교도뿐만 아니라 남인과 시파의 주요 인물들을 처형하거나 유배 보냈는데 이때 이가환, 이승환, 정약종 등이 처형당하고 정약용, 체제공 등은 관직을 빼앗겨야만 했다. 정치판은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왕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아마 조정은 시파의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고 말 것이다. 매관매직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루워졌고, 백성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인생이 되어버렸다. 조선의 역사를 보면 세도정치가 펼쳐지게 되면 거기에 힘들어한 백성들의 일부는 산으로 도망쳤다. 가족과 자신을 위해서 도망친 것이다. 세도정치가 비난받는 이유는 이러하다 세도 정치는 안동 김씨 등 일부 유력한 가문들이 서로 연합하거나 대립하면서 인처관계로 얾혀 정치 집단을 이룬 후, 국가와 민생의 안정은 팽개치고 권력과 이권을 독점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갈등 상황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세도 정치는 언제나 이것을 빚나간 적이 없다. 당연히 백성들의 삶은 더 힘들어졌고 관아의 사또조차 믿을 사람이 되지 못했다. 옳은 소리를 했다가는 당장 곤장을 맞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보통 곤장을 맞으면 3~4일은 진짜 아무것도 못한다고 한다. 얼마나 아픈지는 대충 예상이 간다. 세도정치는 나라의 행보를 막는 아주 질 나쁜 정치라고 생각한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도정치가 지금 우리나라에 일어난다면 아무 큰 사단이 날것이다. 조선시대와는 전혀 다른 스케일의 사건이 될 것이다.”라고 말이다. 지금와서 보면 이 말이 실현이 된 것 같다. 한동안 이슈가 되었고 또 전에는 없었던 차원이 다른 스케일의 사건이 터졌으니 말이다.

 

사람은 자신의 탐욕을 억누르기가 매우 힘들다. 가지고 싶은 것은 계속해서 마음에 담아두기 때문이다. 세도정치는 관직을 구매하기만 하면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을 전부 가질 수 있었으니 당시 권력욕이 강한 남자들에게는 기회로 보였다. 하지만 그 기회는 곧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로 돌아왔으며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권력자들은 결국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이것이 세도정치가 무서운 이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