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제국주의) 제국주의, 미국의 이권개입

MasterJo 2017. 8. 31. 17:12

지구에는 약 200개의 나라가 있고 그 나라들은 각자 자기만의 언어와 전통, 문화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때로는 다른 나라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서 큰 일 들을 이뤄내기도 한다. 이것을 보고 우리는 역사라고 한다.

 

조선은 1800년에서 광복 전까지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과 수탈에 시달렸다. 1882년에는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기도 했다. 서양과는 최초의 조약이었다. 소미수호통상조약은 미국을 최혜국 대우를 해줄 것을 명시한 조약인데, 이 말은 곧 중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다른 나라에게 해줬던 것들은 모두 필수로 미국에게 해줘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이것 역시 불평등조약이었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 조선은 영국,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와 통상조약을 맺었다. 이제 조선은 다른 나라들의 이권 각축장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여러 나라에서 통상조약을 맺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조선의 금이나 곡식 같은 것들을 마음껏 털어가게 되었다. 일본은 서구와의 교역에서 발생한 적자를 조선에 대한 수출로 만회해 경제발전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일본 다음으로 이권을 많이 보장받은 나라는 미국이었다. 조선정부에서는 미국과의 교류를 통해 서구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고, 일본을 견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당시의 국제정세를 파악하지 못한 무지의 결과였다.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에서 보듯 조선에 대해선 경제적 이득만 얻고 식민 지배는 일본에 보장해주어 유럽세력을 견제하고자 했다. 단물만 쪽쪽 빨아먹고 조선은 그냥 일본에게 던져주기로 한 것이다. 미국의 이권개입의 첨병은 의료선교사로 파견된 알렌이었다. 알렌은 18849월 조선에 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였다. 그는 박해를 피해 처음에는 선교사란 신분을 속이고 미국공사관 소속의 의사로 입국했다. 알렌은 그해 12월 갑신정변 때 개화파의 칼을 맞아 중상을 입은 명성황후 척족세력의 거두 민영익을 완치시켜준 공로로 고종의 시의이자 정치고문으로 활약할 수 있게 되었다. 알렌은 선교사란 신분에 걸맞지 않게 경제력 이해득실에 밝은 인물이었다. 그는 고종의 신임을 얻은데 이어 이완용과 같은 조선정부 실력자의 도움을 방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경인철도 부설권을 따낼 수 있었다. 그는 이어 당시 서양 각국이 눈독을 들였던 운산 금광채굴권도 이완용, 명성황후 등에게 로비해서 따낼 수 있었다. 신미양요 때부터 미국이 조선에 진출하려고 했던 이유는 바로 조선에 있는 풍부한 금을 캐내기 위해서였다. 알렌은 채굴권을 커미션을 받고 모오스에게 넘겼고, 모오스는 미국인 사업가 헌트에게 3만달러에 채굴권을 팔았다. 이렇게 채굴권은 돌고 돌았다. 그러나 헌트는 고종이 가지고 있던 금광 이익의 지분 25퍼센트마저 10만 달러에 사버렸다. 그렇게 금광개발에 손을 대 1500만달러라는 거액을 손에 쥐게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미국이 채굴해간 금이 아직 한국에 남아있었더라면 엄청난 양의 금을 우리가 채굴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을 너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이다. 조선은 정말 많은 손해를 보았다. 민비 덕분에 말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것이 중요할지는 몰라도 항상 미래를 생각해야만 한다. 미래에는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래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고 미래의 역사에는 우리가 미련한 인간으로 기록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