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일제강점기의 시작
조선과 일본의 관계는 우리들이 역사 교과에 관심이 없어도 알 수 있듯이 아주 오래 전부터 일본은 조선 땅을 집어삼키지 못해서 안달이었고 우리 민족은 일본에게 당하고 살아온 것이 많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모두 머릿속에 담고 있는 정보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주 뼈아픈 역사가 존재한다. 일본에게 나라를 보호받는다는 명목으로 강제로 제2차 한, 일 협약을 체결했는데 이것을 을사늑약이라고 부른다. 이것으로 인해서 일제는 점점 더 교묘하게 조선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협약을 체결하지 않았더라면 반대한 대신들은 모두 죽이고 그들은 왕을 협박해서 체결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늑약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윽사늑약으로 인해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빼앗겼고, 통감부가 설치되어서 내정을 간섭받기 시작했다. 이는 을사조약에 윽박지를 ‘늑’ 자를 써서 을사늑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한제국은 이미 이때부터 일제 강점기의 시작이 울리고 있었다. 이는 이토 히로부미의 무력시위 속에서 ‘을사오적’이라고 불리는 대신들이 조약에 도장을 직었기 때문이다. 당시 대신들 대부분이 일본의 무력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도장을 찍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조약체결 과정이 강제적이었던 데다 고종이 끝가지 서명하지 않고 도장도 찍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조약으로 성립이 될 수 없다. 일본은 대신들의 도장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당당하게 앞세워서 대한제국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주장하던 고종은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고 있던 네덜란드 헤이그에 세 명의 특사를 파견했다. 당시 의장국이었던 여국은 일본과의 동맹 관계에 따라 고종이 파견한 특사들을 회의장에 입장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이 때문에 특사들은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이준은 헤이그에서 분을 못 이겨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렇게 어두운 분위기가 한반도를 에워싸면서 일제강점기가 시작됐다. 일제는 특사 파견을 이유로 고종을 강제로 폐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이어서 한, 일 신협약을 체결하면서 대한제국 정보의 각 부서에 일본인 차관을 배치하여 내정을 장악했다. 또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 오던 군대마저 해산한 후 대한제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이처럼 일본은 한반도를 점령하기 위해서 많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면 이때를 시작으로 오랜 세월을 한국인들은 일본인의 노예로 생활하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집과 땅을 모조리 빼앗긴 사람도 있고 일본인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죽은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니 그 누구라도 함부로 나라를 되찾겠다는 말을 하기 에는 용기가 부족한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일본은 우리를 멸망시키고자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 힘든 시대에도 열정과 용기는 우리의 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독립투사들의 힘으로 우리들이 힘을 얻고 광복을 이루어 내는데 성공했다.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일들은 모두 우리들의 교과서에 실려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외면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역사를 외면하는 것은 배은망덕한 짓이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누구 덕분일까? 모두 우리를 위해 죽어주신 독립투사들의 덕분이다. 그런데 그런 피와 열정과 땀을 외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조차 버리겟다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