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고대 철학자들도 지금까지 쭉 고민해왔던 문제이다. 자아정체성을 뚜렷하게 하기 위한 고민이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난제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요즘 사회를 돌아보자 학생들은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성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측정한다. 그 가운데서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게 되지만 자신에 대한 정체성과 비전을 잃어간다. 비전을 잃은 학생들은 공부에 더 집착하게 되지만 자신의 노력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때 마치 모든 것을 잃은 듯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학생들이 나오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가져야할 생각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 번 고뇌하면서 자신이 되고 싶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 역시도 중요하다. 고대 철학자들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것은 굉장히 간단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범죄자들조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그들 역시 자신은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극단적인 경우에 불과하다. 어쩌면 우리들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가장 극단적인 순간을 겪고 나서야 알아차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끊임없이 달려가는데 그 가운데서 지쳐 쓰러질 때 잠시 생각하면서 휴식을 가지는 것은 매우 현명하다. 생각이라는 것은 인간의 무기이며 동시에 트레이닝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냈다면 이제는 그 다음 단계로 점프해야 될 시기가 온 것이다. 그 다음단계란 바로 “나는 어디서 왔는가?” 이다. 인간이 어디서부터 왔는지에 대한 이론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다윈의 ‘진화론’과 성경을 기반으로 한 ‘창조론’이다. 찰스 다윈은 죽기 전에 자신의 이론을 부정했지만 그 때는 이미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기에는 늦은 때였다. 이제는 사람들이 다윈의 진화론보다는 성경을 기반으로 한 ‘창조론’을 많이 신용하고 있다. 자 여기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자신은 어디서 어떻게 왔는가? 그저 부모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태어났다고 말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부모는 어떻게 여기에 왔는가? 그 부모의 부모는? 결국에는 이렇게 꼬리를 물고 올라간다. 자신이 어떻게 왔는지를 알아낸다면 이제는 어떻게 나아가야할 지를 생각해야 한다.
철학자들은 말한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부터 돌아봐야 한다.” 라고 말이다. 자기를 외면하는 사람은 결국 스스로 자기 눈을 가리는 꼴 밖에 안됀다. 우리가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먼저 자기부터 돌아봐야한다. 의사가 진료를 하기 위해서는 검사부터 해야하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말한다. 꿈이 없다고 말이다. 어쩌면 이미 아이들은 공부에 시달려서 꿈을 잊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는 이젠 공부보단 생각하는 힘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아이들에게만 속한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에 치여 사는 모두에게 허용되는 이야기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