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태도의 차이-10
유명인이 되기 위한 조건은 간단하다. 무언가를 이슈로 만들고 그 무언가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만 확실하게 밝혀진다면 유명인이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요즘은 워낙 개성의 시대다 보니 오로지 자극적인 개성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문제다.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존 마에다는 곧 MIT안에서 유명인으로 거듭났다. 아무도 그를 신경쓰지 않았지만 이번 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났다. 당시 컴퓨터로는 그림그리기가 매우 힘들었다. 태블릿 pc를 연결해서 그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프로그램은 당연히 없었다.
“너 존 마에다라고 들어봤어? 걔 굉장해 컴퓨터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컴퓨터로 그림까지 그린다니까, 내 눈으로 직접 봤다고.”이렇게 입소문이 타고나기 시작했다. 1985년 MIT의 수학 천재들 사이에서는 ‘컴퓨터로 그름을 그리는 신입생 존 마에다’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학창 시절 반에서 가장 뚱뚱하고 부끄럼 많던 마에다가 혼자 터득한 프로그래밍 기술로 MIT에서 유명인이 된 것이다. 1980년대, 이제 막 가정용 pc가 보급되기 시작했던 시대였는데, 마에다는 그 누구보다 먼저 그런 기술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존 마에다의 말에 의하면 “당시 컴퓨터는 전원 플러그만 꼽으면 그냥 화면이 밝아지는 기계일 뿐이었어요,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도,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이나 교재도 없었지요, 어찌 보면 당시 내가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내 아버지가 두부를 만드는 작업과 비슷했습니다. 둘 다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수작업이니까.”라고 말했다. 작가가 마에다를 만난 것은 2011년 12월 신라호텔에서였다. 그는 세계적 디자인 스쿨인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의 총장으로 장학금을 모금하러 다니는 중이었다. 악수를 건네는 손가락은 매우 가늘었다, 소년의 체구였지만 고요한 두 눈에는 주변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그는 일반 명함의 절반만 한 종이를 건넸다. 인사동으로 가 자신이 좋아하는 한지를 샀고, 즉석에서 사인펜으로 적어 명함을 만든 것이다. 그러고는 “디자이너는 끊임없이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더 창의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없을까 고민하면서 말이죠, 세상은 디자이너를 ‘물건을 더 예쁘게 다듬는 사람’정도로 알지만 그렇지 않아요”라고 말이다. 그의 대학교 학창 시절 때 가장 핫했던 그가 가장 겁냈던 것은 MIT의 유명인이 됐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마에다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럴 때마다 마에다는 ‘내가 정말로 제대로 하는거야?’라는 생각을 다시 돌아봤다.
어느 한 게시판에서 이런 글이 올라왔다. “유명해 지기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유명해지고 난 후에는 그 자리를 지키고자 하지만 아무것도 못할 때가 많다.”라고 말이다.
마에다는 그저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을 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당시 컴퓨터가 발전이 많이 안됐었다는 것이 상호작용을 일으켰고, 마에다는 순간 핫이슈가 됐다. 그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애플 컴퓨터를 받았었고, 그것으로 틈틈이 무언가를 계속했었다. 그 결과 마에다는 그림과 아버지가 원하셨던 MIT를 졸업하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