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설화)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3
우리가 신화 다음으로 알아볼 것은 바로 삼국의 건국설화이다. 이 삼국 건국설화에는 숨어있는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엇일까? 건국설화야 우리가 조금씩은 알고 있지만 역사를 세밀하게 알기 위해서는 필수요소 중 하나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기 자신들의 건국설화를 가지고 있다. 그 설화의 내용이나 이야기 구조는 조금씩 다르다. 삼국이 형성될 당시의 정황이 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건국설화는 창업세력의 지배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실을 과장하고 신비화하고 있으므로 이야기 자체를 믿을 수는 없지만, 그 배경을 파고들어간다면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알 수 있다.
먼저 고구려의 건국설화부터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을 통해 간략하게 알아보자. 고구려의 건국설화는 부여에서 시작된다. “부여왕 해부루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제사를 지내 후사를 구하려 했다. 제사를 지내러 가는 길에 금색을 띤 개구리 모양의 작은 아이가 있었다. 해부루는 이 아이를 아들로 삼고, 이름을 금와라 했다. 금와는 해부루를 이어 동부여의 왕이 되었다. 어느날 금와왕은 태백산 남쪽 우발수 쪽에서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났다. 그때 유화는 천제의 아들을 자칭하는 해도수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금와왕이 유화를 데려와 출산하게 했는데, 괴이하게도 사람이 아닌 알을 낳았다. 놀란 왕이 알을 버렸으나 개와 돼지 등 짐승들도 피하고, 돌로도 깨지지 않아, 할 수 없이 유화에게 돌려주어 부화하게 했다. 그러자 알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아이는 영걸스럽고, 기상이 높았으며, 활을 잘 쏘아 주몽이라 불리게 되었다. 금와왕의 아들들은 이런 주몽이 자신들의 왕위를 빼앗을까 두려워 주몽을 죽이려 했다. 주몽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이끌고 도망을 갔는데, 도중에 제사, 무골, 묵거라는 사람들을 만나 성씨를 내려주고 부하로 삼았다. 강가에 이르러 추격하는 병사들에게 잡힐 뻔한 위기의 순간에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줘 무사히 피할 수 있었다. 주몽은 다르는 무리와 함께 압록강가에 정착해 나라를 세웠다. 그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자신의 성을 고씨로 했는데, 이때 주몽의 나이는 스물 둘이었다. 초기 나라이기 때문에 별로 큰 힘은 없었다 하지만 고구려의 성을 공격하는 나라들은 거의 없었다. 주몽의 활솜씨가 너무나도 뛰어났기에 모두가 고구려를 견제만 할 뿐 전쟁은 원치 않았다. 고구려는 훗날 엄청난 괴물 나라로 성장하게 되는데, 삼국전쟁에서 신라와 당나라연합과 최후의 전쟁을 치러도 전혀 조금도 밀리지 않는 기색을 볼 수 있다. 당시 당나라는 중국에서 가장 강한 나라였는데, 그 나라의 병력으로도 연개소문의 성을 뚫지 못할 정도로 고구려는 강력했다.
어떤 역사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삼국의 건국설화 중에서 고구려의 건국설화가 가장 현실에 가깝다.”라고 말이다. 확실히 백제나 신라의 건국설화에 비해서는 가장 현실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건국설화이다.
삼국의 통일은 결국 신라가 이루었지만 이것도 김유신의 묘책이 없었다면 아마도 신라가 패배했을 것이다. 삼국 전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배울 만한 것들이 매우 많고, 가끔씩은 “고구려에 김유신이 태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