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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4 본문

나의 생각

(가야사)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4

MasterJo 2016. 9. 19. 16:28

우리 한반도에는 아직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초기의 나라들이 있다. 한반도에는 초기에 일찍부터 땅을 지배하고 있었던 세력이 있었다. 당연히 그 세력은 토착세력과 함께 새로운 사회발전이 이뤄졌다.

 

그 결과 마한, 진한, 변한의 연맹체가 나타나게 되었다. 대전, 익산지역을 중심으로 경기, 충청, 전하도 지방에서 발전한 마한은 한강유역에서 새로 일어난 백제국에 통합되었다. 대구,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진한은 신라성립의 기틀이 된 사로국으로 성장하였다. 김해,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한 변한은 가야연맹체로 발전하게된다.

 

그런데 가야연맹체만은 앞의 두 나라와 달리 단일한 국가로 성립하지 못하고 소국연맹체를 유지하다가 마지막 연맹국인 대가야가 562년 신라에 병합되는 것을 끝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4세기경까지만 해도 신라에 버금가는 세력을 자랑했던 가야가 순식간에 멸망한 것이다 삼국사기는 아예 가야사를 빼버리며 철저히 외면했다. 도대체 가야는 어떤 나라였고, 왜 멸망했던 것일까? 우리가 가야사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 오히려 일본이 가야사를 이용했다. 일본은 자신들이 가야지역에 임나일본부라는 것을 두어 한반도 남단을 식민지 지배했다며 역사를 왜곡했던 것이다. 가야는 신라나 백제처럼 단일한 국가체제를 형성하는 대신, 금관가야를 비롯한 여러개의 소국으로 분립돼 느슨한 연맹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야가 신라와 비슷한 수준의 국력이었던 것은 낙동강유역의 비옥한 평야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어 확실한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국 간의 느슨한 연합 시스템으로는 4세기 말 급격한 국제관계의 변동에 적절히 대처하기 힘들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신라와 연합해 가야, 백제, 왜 연합군에 큰 타격을 가했다. 특히 광개토대왕의 5만 군대와 낙동강 하류지역까지 진출하여 임나가야 아라가야를 토벌하자, 가야국 맹주 금관가야는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뒤 고령의 대가야가 맹주 역할을 대신했지만 가야연맹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532년 금관가야가, 562년 대가야가 신라에 항복하면서 가야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가야 지역에는 땅 속에 풍부한 양의 철들이 매립되어있었고, 가야는 굉장히 좋은 질의 철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런 질의 철은 곧 일본 쪽으로 수입 되었던 적도 있었고, 이런 철들은 일본도의 재료가 되어 강력하게 변신했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외면한 역사 속에는 우리가 몰랐던 더 많은 것들이 잠들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돌덩이를 맨발로 차는 것과 같은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역사 속에서 우리가 새롭게 발전할 길을 알려주고 있다.

 

돌덩이를 맨발로 차는 것처럼 미련하고 바보 같은 짓이 없다. 새롭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찾아야하고, 더 이상 우리들이 하는 일 가지고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새로운 것을 찾기가 힘들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면 되는 것이고, 그럼 그것이 곧 혁명을 불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