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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힘은 곧 다른 권력과의 충돌을 일으킨다. 그 충돌은 곧 소규모든 대규모든 소동을 일으키게 되어있다. 권력을 잡은 사람은 더 많은 재물을 얻기 위해서 그 권력을 이용할 것이다. 조선시대 전쟁이 잦아들고 조정이 안정화가 되고 다시 권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다른 권력을 잡은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났다. 이것을 논쟁이라고 하는데 관직을 둘러싼 선비들의 다툼도 있었고 그 다툼 속에서 한 자리 차지한 인물은 곧 더 강한 권력을 향해서 나아갔다. 논쟁이란 양 쪽 의견이 서로 맞부딪치면서 일어나는 일종의 다툼이다. 조선시대 때는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뭉친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을 붕당이라고 한다. 흔히 그룹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붕당끼리 논쟁을 벌이는 상황을 당쟁이라고 하..
우리나라 땅에서의 조선시대의 역사 중 가장 황금기를 맞이했던 시대는 바로 세종대왕 시대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시민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세종이 왕위에 있는 동안 어떤 업적이 이뤘는지 살펴보자 이방원이 왕권과 신하들 사이의 벽을 만들고 뒤를 이어서 왕이 된 세종은 아버지 이방원의 업적 덕분에 안정적인 왕권과 경제력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조선의 백성들은 글자를 읽을 수 없었고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양반들이나 상인들 밖에 없었다. 세종은 의정부 재상들에게 정치적 책임을 넘겨주는 의정부 서사제로 정치 형태를 변경했다. 그 이유는 더 이상 왕권에 도전하는 신하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마음 놓고 훌륭한 재상들을 등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훌륭한 재상을 둔 왕은 적..
오랜 역사는 곧 오랜 문화와 전통, 그리고 다른 것들과는 차별화된 무언가를 보여준다. 오랜 역사를 만들 때 그 역사에는 반드시 사건이 필요하다. 그 사건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누구보다 생각이 깊은 사람만이 역사에 이름을 올릴 만한 사건을 일으킬 수 있다. 우리나라 땅에서는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다. 그것을 글자로 기록한 것이 바로 역사다. 고조선, 삼국시대, 후삼국시대, 고려, 조선 우리나라의 역사는 이렇게 네 분류로 나누어져 있다. 우리들은 조선 초기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자. 나라가 막 건국 된 후의 조선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고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건국을 선포했다. 수도는 한양으로 삼았다. 그 후에도 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우리나라의 아주 오랜 시절, 조선이라는 나라이름을 가지고 역사를 써가던 시절에는 정말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정치에 관련된 일이라면서 사람이 죽는 것은 일상일 정도였다. 권력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오늘 날 조선 역사에서 전쟁을 제외하고 사람이 가장 많이 죽은 사건을 뽑으라고 하면 당연히 사화가 빠질 수 없다. 사화란 정치에 의해서 일어난 내분으로 조정 관료들이 엄청나게 많이 죽은 사건들을 말한다. 우선 사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왕 역시 폭군이여야 하는데 우리 머릿속에는 폭군이라고 하면 당연히 한 명 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연산군 역시 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사화는 총 4번이 일어났는데 가장 처음 일어난 사화가 바로 연산군 시절 무오사화이다. 이어서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가 잇따..
전쟁이 끝나고 이제는 다시 앞을 향해서 나아가기 위해 이전 것을 원래대로 복구 시켜둘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너진 정부부터 다시 세워야만 한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기초를 쌓아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1대 대통령은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다. 이제 한국전쟁이 잠시 휴전 상태에 접어들자. 미국의 원조와 함께 다시 정부를 세우고 이승만 정부는 부패 근절이나 친일파 청산에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면서 권력 강화에만 몰두했다. 6 25전쟁 이후에는 장기 집관을 시도했다. 이승만 정부는 전쟁 직전에 실시된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무소속 출마자들이 대거 당선되자 이승만은 국회의 간접 선거에 의한 대통령 유지가 힘들 것을 우려해서 대통령 직선제 개현을 단행했다. 한창 전쟁 중이던 ..
늘 날 정치판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범죄는 무엇일까? 바로 비리이다. 이 비리라는 범죄는 인간의 권력욕이 만들어낸 범죄인데 주로 돈을 주고 권력을 사는 행위를 말한다. 마땅히 자신의 능력을 얻어야 하는 권력을 돈을 주고 구매를 해버리면 공정성이 무너지게 된다. 조선시대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던 것은 바로 세도정치이다. 조선의 역사를 쭉 훓어보면 세도정치가 본격화 되었던 시기에 백성들의 삶이 궁핍해졌다. 권력을 돈 주고 사는 매매까지 일어났으며 그 때문에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서 백성들의 피와 기름을 쪽쪽 빨아먹었던 것이다.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탕평정치가 끝을 맞이하게 되고 틈을 노린 세도정치가들이 다시 조정에서 판치기 시작했다. 영조와 정조가 추진한 탕평정치로 왕에게 다시 권력이 집중됐었는데..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조선은 예의와 법도를 중요시 여기는 나라였다. 한 대는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이 말은 조선시대 때 우리나라가 얼마나 예의와 법도에 대한 생각이 깊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예의와 법도를 중요시 여기는 만큼 조정에서도 간혹 예의 관련된 문제로 시끄러워 지는 일들도 있었다. 이것을 예송이라고 한다. 예송이란 예법을 가지고 다투는 것을 말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기해예송과 갑인예송이다. 조선시대에는 예법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로 토론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먼저 우리가 두 눈 뜨고 살펴볼 것은 가장 처음 일어났던 기해예송이다. 기해예송은 효종이 죽으면서 1659년에 일어났다.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상복을 1년 입을 것인가, 3년을 입을 것인가가 문제였던 ..
전부터 입 아프게 꽤 여러 번 말했지만 전쟁은 언제나 역사와 함께했다. 전쟁으로 인해서 많은 역사가 생겼고, 나라도 생겼다. 대항해 시대 이후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식민지 정복 같은 작은 전쟁역시 빈번하게 일어났다. 서양에서는 많은 전쟁들이 있었는데, 그 전쟁들 중에서도 헤비급을 자랑하는 전쟁이 있었으니 바로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이다. 이 두 전쟁은 정말 오랜 세월 간 큰 전쟁을 계속해서 벌여왔다. 그 덕분에 주위 환경은 피폐하게 변했고, 주위에는 시체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릴 정도였다. 백년전쟁이 터지기 전에도 영국과 프랑스의 국경이 분명하지는 않았다 두 나라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유럽나라 대부분이 이슬람교 나라들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었지만 자기들끼리는 네 편과 내 편을 많이 따지지는 않았다. 한 명의 왕이..
서양과 중동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시간이 지난 후 동양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우리 동양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날 만한 나라는 조선과, 중국, 일본 정도인데, 과연 이 세 나라 중에서 우리가 시선을 기울여봐야 할 곳은 어디일까? 우리들이 오늘 날 동양에서 가장 유명한 나라 중 하나인 일본에 대해서 시선을 기울여보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일본에서 유명한 시대, 바로 사무라이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고려에 무신정권이 들어설 즈음 일본에도 사무라이 정권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를 보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흥미롭다. 일본은 한반도, 중국의 역사와 다른 점이 꽤 많다. 송과 고려는 황제와 왕의 권력이 상한 반면에 11세기 일본은 한반도나 중국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천황이 아니라..
북한에서는 아직도 김일성 일가의 의한 폭정이 계속되고 있다 인민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고, 위 장관들만이 먹고살 수 있게 되어버렸다. 그런 세상에서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우리나라로 탈북을 감행한다. 우선 전에 못했던 김일성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그는 동북항일연군 교도려의 지휘관으로써 소련군 소령 계급장을 달고 항일유격대 황동을 수행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김일성을 자신들의 대리인으로 삼아도 그들의 점령 정책을 수행하기에는 별다른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던 소련은 결국 김일성을 북한의 1인자로 세우게 된다. 이것은 이승만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이 그를 정치적으로 후원했던 미국전의 방침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이것이 남의 힘에 의해 독립이 주어진 ‘도둑처럼’ 해방을 맞은 남북한 양쪽의 비극적 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