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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사무라이) 일본, 사무라이 시대

MasterJo 2017. 5. 26. 17:57

서양과 중동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시간이 지난 후 동양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우리 동양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날 만한 나라는 조선과, 중국, 일본 정도인데, 과연 이 세 나라 중에서 우리가 시선을 기울여봐야 할 곳은 어디일까?

 

우리들이 오늘 날 동양에서 가장 유명한 나라 중 하나인 일본에 대해서 시선을 기울여보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일본에서 유명한 시대, 바로 사무라이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고려에 무신정권이 들어설 즈음 일본에도 사무라이 정권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를 보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흥미롭다.

 

일본은 한반도, 중국의 역사와 다른 점이 꽤 많다. 송과 고려는 황제와 왕의 권력이 상한 반면에 11세기 일본은 한반도나 중국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천황이 아니라 귀족들의 권력이 더 강했던 것이다. 천황과 바로 직전에 천황이었던 상황 사이에 싸움도 많았다. 상황은 은퇴한 천황이다. 왕은 은퇴를 하면 권력을 모두 내려놓는 것이 정상인데 상황은 여전히 권력을 쥐고 천황을 흔들려고 했던 것이다. 이 싸움에 무사들이 끼어들기 시작했고, 잠시 이때 일본의 상황을 보자면 일본 지방호족들의 권력이 매우 강했던 적이 있었는데 11세기로 들어서면서 중앙귀족의 권력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지방호족들은 갖고 있던 모든 땅을 중앙귀족에게 주고 보호를 요청했다. 중앙귀족이 어떤 집단이었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사람이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은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신변보호를 요청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지방호족들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자존심과 재산을 내려놓았다. 이런 중앙귀족들의 정체는 바로 사무라이 집단이었다. 사무라이 집단이 중앙의 권력을 차지하고, 지방에까지 힘을 뻗은 것이다. 막대한 힘을 가진 중앙의 사무라이 집단을 이길 수 있는 지방호족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중앙에서 지방까지 상하관계로 사무라이 집단이 연결됐다. 서양의 봉건제와 유사한 봉건제가 일본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1156년 마침내 천황과 상황사이에 전쟁이 터졌다. 이 전쟁을 호겐의 난이라고 부르고 3년 후에는 다시 2차전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이 전쟁에서 천황이 쪽이 승리했다. 천황쪽의 사무라이는 다이라 가문이었다. 원래 다이라 가문은 천황이 고용한 용병이었는데 다이라 가문은 을 앞세워 정치권력을 장악해 버렸다. 셋칸 정치를 기억하는가? 다이라 가문은 바로 그 셋칸 정치를 부활시켜 직접 국가를 통치했다. 많은 전쟁이 있었으니 당연히 많은 사람들과 사무라이들이 죽어나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천황의 권력을 노리는 세력은 많았다. 사무라이에게 권력을 빼앗긴 천황은 억울했다. 천황 편에 있던 왕족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그 왕족은 반란을 시작하기도 전에 발각돼서 죽고 말았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과한 욕심은 무의미한 죽음을 불러오고, 과도한 권력은 목숨을 재촉한다.” 라고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중심을 지켜야만 한다. 아무리 강한 권력이 있어도 주위에서 나를 노리는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는 것을 쉽게 빼앗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값지고 비싼 것일수록 더욱 그런다. 그러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한 번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것은 놓아버리고 다음 번을 노려라 그때 다시 안 빠져나가도록 붙잡으면 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