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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왕조) 우마이야 왕조, 유럽의 일원이 되다

MasterJo 2017. 5. 24. 16:34

세계는 끊임없이 무언가가 일어난다. 그것이 바로 역사가 되어서 책에 기록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도 일어나고 때로는 시민들이 일으킨 혁명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조금 추후의 일이다.

 

이런 시기에 유럽은 프랑크 왕국이 지배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프랑크 왕국은 귀족층의 부정부패로 인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런 나라에서 뭐 하나 제대로 굴러갈 일이 있을 리가 없다.

프랑크 왕국은 630년 이후에도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비슷한 시기, 이슬람권에서는 지배층이 칼리프 자리를 두고 분쟁이 일어났다. 그 거대한 세력 내에서 분쟁이 일어났으니 어마어마한 피바람이 불 것이 예상됐다. 이 이야기는 조금만 이따가 하기로 하고 유럽을 살펴보자 프랑크 왕국은 귀족들이 백성들 알게 모르게 저지른 비리들이 온통 들통나게 되고, 결국에는 나라가 완전히 망가져버려서 나라를 하나 둘 씩 떠나가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시대에 유럽으로 진출한 한 왕조가 있었는데 우마이야 왕조이다. 전에 봤듯이 정통칼리프 시대 때는 원로원에서 칼리프를 임명했다면 이제는 우마이야 가문에서 칼리프 자리를 세습했다. 원래 칼리프는 이슬람 교단의 지도자를 가르키는 말이지만 14대에 걸쳐 칼리프 자리를 세습했기 때문에 왕조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마이야 왕조의 전성기는 8세기 초반이었는데 이 때 우마이야 왕조는 인도 북서 지역에서 시작해서 아프리카 북부를 거쳐 유럽 이베리아 반도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얼마 안가서 전쟁을 일으켜서 넓은 폭의 땅을 정복했다. 3개의 대륙을 걸친 대제국이었던 젬이다. 로마 제국의 전성기 시절 영토와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은 영토였다. 오히려 로마 제국보다 더 위대했다고 볼 수도 있다. 로마 제국은 수백 년간 영토를 조금씩 넓혔지만 이슬람 제국은 100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 안에 그 모든 일을 해냈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프랑크 왕국은 혼란에 처한 상황에서 새로운 왕조가 유럽에 까지 들어서게 되니 나라에 비상사태가 걸렸다. 무능한 귀족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그저 부정하게 모은 금화나 몰래 챙겨두는 수밖에 없었다. 프랑크 왕국은 마치 바람 앞의 촛불과 같았다. 당장이라도 아무이야 왕조가 훅하고 덤벼들면 와르르하고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마이야 왕조의 활약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유럽 땅을 본격적으로 공략했다는 것이다. 우마이야 왕조는 유럽 땅에 이슬람 기지를 만들었다. 이 기지는 유럽 국가들의 약점을 제대로 공략하는 도구가 되었다. 프랑크 왕국 역시 이런 우마이야 왕조에게 멸망당했다. 일본 나라 시대가 시작되고 1년이 지난 711년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와리트 1세 군대가 유럽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했다. 이 때 프랑크 왕국은 말 그대로 혼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베리아 반도는 프랑크 족의 땅이 아니라 시고트족의 영역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였던 프랑크 왕국의 영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프랑크 왕국은 혜성같이 등장해서 꽈 강력한 인상을 남기고 사라졌지만 그들은 시고트족에 비하면 아직 부족하다.” 라고 말이다. 과연 시고트족은 얼마나 강했을까? 얼마나 강했길래 유럽 최강의 나라인 프랑크 왕국이 상대가 안되는 것일까?

 

한 나라의 힘은 나라를 이끌어가는 귀족들에 의해서 나오기도 하지만 그 나라를 뒷받침해주는 국민에게서 나온다. 국민들이 하나로 뭉치면 당장 일주일 안에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혁명을 이끌어갈 인재는 매우매우 보기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