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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곧 아픔을 낳고 그 아픔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지만 온전히 치료할 수 있다. 그 시간동안 많은 것을 만들 수 있다. 나라의 발전과 다음 전쟁에 대비하는 준비성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계속되는 공격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을 진행할 수 없다. 조선에서는 임진왜란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또 전쟁이 발발했다. 그 전쟁은 병자호란이라는 이름을 달고서 새로운 재앙으로 조선을 덮쳤다. 중국인들의 특성 상 엄청난 수의 병사들이 몰려왔는데 임진왜란만큼 갑작스러운 전쟁인 만큼 전쟁대비가 하나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을 받았다. 조선에서 임진왜란이 끝난 후 38년 뒤 이번에는 병자호란이 발발했다. 이는 1636년 12월에 일어난 전쟁이다. 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명나라에 전쟁을 선포하면서 조선에..
조선 후기 시대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사건들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대이기도 하다. 갖가지 전쟁과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대표적인 조선역사는 이 시기 때의 일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먼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어났었던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두가 전설이라고 기억할 정도로 유명한 전쟁이다. 일본의 전국 시대를 무력으로 잠재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명가도를 주장하면서 조선에게 길을 빌려주기를 청한 것이 이 전쟁의 시발점이었다. 그들은 곧 조선을 침략하고 중국 땅을 공격하기 위한 요새로 삼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부탁을 위장한 협박에 조선은 일본의 상황을 보기 위해서 황윤길을 정사로, 김성일을 부사로 하여 통신사를 보냈다. 돌아온 통신사는 각각 다른 ..
일본은 상당한 시간 동안 한반도를 노렸던 만큼 일본의 힘을 두려워해서 생겨난 사람들 역시 한반도에 아직도 존재한다. 흔히들 우리가 ‘친일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와 을사늑약을 맺을 당시에도 친일파는 존재해왔다. 일제강점기 말기, 조선민중은 인간이하의 삶을 강요받아야만 했다. 일본인 어린아이에게 조선인 어르신이 고개를 숙여할 정도로 조선인들의 치지는 비참했다. 이런 민족의 시련기에 이른바 민족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자들은 친일행위를 자행했다. 조금이라도 사람답게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일본인과 일본 경찰에게 계속해서 탄압받고 짐승 같은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가야만 했던 조선인들 중 소수의 인간들은 우선 자신만이 살아남는 것을 생각해서 민족을 팔아넘기기 시작했다. 일본의 높은 계급에 있는..
지구에는 약 200개의 나라가 있고 그 나라들은 각자 자기만의 언어와 전통, 문화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때로는 다른 나라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서 큰 일 들을 이뤄내기도 한다. 이것을 보고 우리는 ‘역사’라고 한다. 조선은 1800년에서 광복 전까지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과 수탈에 시달렸다. 1882년에는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기도 했다. 서양과는 최초의 조약이었다. 소미수호통상조약은 미국을 최혜국 대우를 해줄 것을 명시한 조약인데, 이 말은 곧 중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다른 나라에게 해줬던 것들은 모두 필수로 미국에게 해줘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이것 역시 불평등조약이었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 조선은 영국,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와 통..
우리나라와 가장 원수 진 나라는 과연 어느 나라일까?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한반도를 괴롭혀왔고 앞으로도 한반도를 노릴 예정이다. 우리들은 항상 그것은 신경 써야만 한다. 오늘은 일본에게 당했던 우리나라 역사 중 하나를 살펴보자. 1875년 8월 일본군함 운요호는 수로 측량을 이유로 강화도 근처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접근했다. 강화도를 지키던 조선군 입장에서는 당연히 선전포고로 인식해서 대포를 발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본은 의도한 듯이 공격을 당하고 난 후에야 수로 측정을 하러왔다고 말하면서 대포 발사에 대한 항의를 했다. 일본은 “조선 측이 갑자기 공격을 했다.”라고 말했다. 조선과 일본이 선전하면서 조선에 나와 있는 일본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부산에 군함 3척을 파견해서 ..
우리 조선은 다른 나라의 역사들보다 근대화가 느린 편에 속했다. 서양의 경우 그곳에서 근대기술들이 생겨났으니 당연히 빠른 발전을 이뤘을 테지만 조선은 많은 이유로 근대화가 느리게 다가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전 세계가 제국주의에 열광할 때 우리 조선에서는 아직도 세도정치가 들이 판치고 있었다. 세도정치와 관료들의 부정부패 점철됐던 19세기는 세계적으로는 제국주의가 본격화됐던 시기였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제국주의 열강들은 세계 전역을 식민지 삼아 정치적, 경제적 침탈을 자행했다. 아시아의 대국 중국은 1840년과 1856년 영국과의 1, 2차 아편전쟁에서 패배해 반식민지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과학의 차이에서 밀리게 된 것이다. 서양의 기술력은 중국의 많은 병력들을 모조리 무산시켰고 결국에는 중..
우리는 미리 알려진 것에 대해서 미리 준비하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멍청한 것이 없다. 하지만 이미 조선에서는 그런 상황을 겪었었는데 바로 임진왜란 때이다. 이것으로 인해서 많은 피해를 입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것을 알아보자. 임진왜란은 전에 말했듯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전쟁이다. 일본과의 교역을 모두 끊어버린 중국과 조선, 그 상황에서 일본은 상당한 위기를 느꼈다. 도요토미는 다시 한 번 양 국에 정규무역을 요청했지만 양국의 정부는 일본에 대한 불신으로 그 마저도 거부해버리고 만 것이다. 궁지에 몰린 일본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는지 전쟁을 강행하기 시작했다. 도요토미는 1588년 조선에 사신을 보내 통신사 파견을 요청했다. 무역재개를 위해서였다. 이때 조선정부가 거절하자 도요토미는 사신으로 갔던 ..
과거에는 많은 문제들로 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지금은 국제사회다 보니 전쟁이 아주 적게 일어나기는 하지만 여전히 작은 전쟁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역사에 전쟁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전쟁은 과연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에게 조선시대에서 일어난 전쟁 중에 단 하나만 꼽아서 말해보라고 하면 내 예상이기는 하지만 임진왜란이 가장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임진왜란은 왜 일어났을까? 당시 일본의 상황은 상당히 암울했다. 일본은 당시 많은 내전이 일어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의 내전의 막을 내렸다. 일본은 주로 조선과 중국과 교역을 많이 했는데 당시 중국과 조선이 무역을 끊어버리니깐 더 이상 일본에는 먹고 살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도자기, 조선에서는 쌀 같은 곡식들을 주로 무역을 했는데 ..
오늘 날 법은 무엇을 위해서 있는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럼 이 법이라는 것은 과연 언제부터 있었을까? 정답은 부족사회가 시작되기 시작하면서이다. 지도자라는 계급이 생겨나고 그 지도자의 말이 곳 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자라는 것이 생겨나면서부터 법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정해놓을 필요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경국대전이 바로 그 예시가 될 수 있겠다. 예로부터 조선은 예의를 중시했으며 그렇기에 이 경국대전의 등장은 파격적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보면 법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정해져 있지 않았기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판단을 했다. 예를 들면 한 고령의 사또가 그 역할을 했다. 조선은 법치를 통치의 근간으로 규정한 국가였다. 기본법전 없이 왕법만으로 통치한 고려의 정치에 ..
조선의 역사를 보면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싶은 사건들이 가혹 나오기도 한다. 물론 당시는 서로 간의 불신이 당연시 되는 시대였으니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불신 없다면 당연히 분열과 싸움도 일어나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큰 사건 중 하나는 바로 세조가 일으킨 계유정난이다. 전에 말했던 사관을 이 사건에 더해보면 두 가지의 해석이 나오게 된다. 물론 그 두 가지의 해석 부정적인 시각과 긍정적인 시각이다. 앞으로는 이것을 알아보자. 언제나 역사에는 긍정과 부정 두 가지의 사관이 존재한다. 세로는 단종이 왕위에 오른 후, 김종서와 황보인 등이 신권을 강화해가자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과 김종서, 황보인 등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세로제 대해서는 그동안 두 가지 입장의 해석이 있었다.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