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를게임같이

(임진왜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생의 실수 본문

나의 생각

(임진왜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생의 실수

MasterJo 2017. 8. 21. 16:41

과거에는 많은 문제들로 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지금은 국제사회다 보니 전쟁이 아주 적게 일어나기는 하지만 여전히 작은 전쟁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역사에 전쟁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전쟁은 과연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에게 조선시대에서 일어난 전쟁 중에 단 하나만 꼽아서 말해보라고 하면 내 예상이기는 하지만 임진왜란이 가장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임진왜란은 왜 일어났을까? 당시 일본의 상황은 상당히 암울했다. 일본은 당시 많은 내전이 일어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의 내전의 막을 내렸다. 일본은 주로 조선과 중국과 교역을 많이 했는데 당시 중국과 조선이 무역을 끊어버리니깐 더 이상 일본에는 먹고 살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도자기, 조선에서는 쌀 같은 곡식들을 주로 무역을 했는데 이 두 가지가 다 사라지니 섬나라인 일본에서는 더 이상 먹고 살 것이 없었다. 일본은 궁지에 몰렸고 이러한 상황을 전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고교 국사교과서에서 설명하는 임진왜란의 도발원인은 이러하다.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서 장기간에 걸친 전국시대의 혼란이 수습되고 있었다. 도요토미는 국내 정권의 안정을 위하여 불평세력의 관심을 밖으로 쏠리게 하고 아울러 자신의 정복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조선과 명에 대한 침략을 준비했다.” 라고 교과서에 나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30만 명이 넘는 병력이 동원돼 12만 명 가까이 죽은 전쟁의 원인으로는 너무 단순하다. 도요토미가 단지 정복욕 때문에 이런 전쟁을 일으켰을까? 일본에서 도요토미는 현실주의자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도요토미가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 즉 경제에 있었다. 일본 측에서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나 노예전쟁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부르는 것은 이 전쟁의 성격이 무엇이었나를 보여준다. 16세기에 일본은 조선,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많은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무기류 말고는 별다른 생산이 없었던 일본에서 조선의 면직물, 곡물, 중국의 도자기류는 지배층의 일상생활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물품들이었다. 마치 게임을 하려는 컴퓨터가 없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러한 물품의 거래를 통해 얻는 이문은 막대했다. 특히 짚으로 돛을 만들어썼던 일본은 16세기를 전후하여 조선의 면포를 돛의 재료로 쓰게 되면서 항해술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런데 조선과 중국의 이런 물품의 수풀을 규제하고 나섰다. 내수용으로 쓰기에도 부족했을 뿐더러 연안에서 해적활동을 벌이는 왜구의 폐해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1510년 삼포왜란 후 조선은 무역량을 절반으로 줄였고, 중국은 해안을 봉쇄하는 해금정책까지 펴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당시 인지도와 권력을 양손에 쥐고 있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을 치러간다는 이유로 조선에게 길을 비켜줄 것을 요구하면서 임진왜란이 시작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도요토미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은 그의 일생의 가장 큰 오점이다.”라고 말이다. 도요토미는 임진왜란만 빼면 정말 화려한 인생을 살았다. 그는 누구보다 일본인에게 신뢰를 얻는 인물이었고 일본의 권력 2인자까지 올라간 굉장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지만 남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한다. 반면 도요토미는 일생의 마지막에 와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전쟁은 무엇을 어떻게 하든 자신도 손해를 보고 자신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