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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마틴 루터 킹) 마틴 루터 킹 자서전-1

MasterJo 2016. 5. 25. 16:23

지금의 미국이 있기 위해서는 보다 무엇이 가장 필요했을까? 자원? 더 뛰어난 지도자? 둘 다 아니다. 지금의 미국이 있기 위해서는 인종평등이 가장 필요했다. 미국은 수많은 주로 나뉘어져 있는데, 오래전 미국은 흑인 박해가 심했다.

 

그런 흑인들을 백인들과 똑같이 평등화시켜준 인물 중에 가장 대표적이고 위대한 인물 중에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신데, 이분은 흑인으로써 당시 흑인박해를 직접 경험해보신 분이시다. 이분의 아버지 역시 목사님이셨고, 언제나 곁에 있지는 못해도 아들 옆에서 흑인박해를 없애기 위해서 힘쓰셨다. 당시 인종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죄다 탑압을 받았으므로 아무도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한 사람의 업적을 알아보기에는 그분의 자서전만큼 좋은 것이 없는데 자서전을 한번 열어보자,

 

마틴 루터 킹은 대공황이 시작될 무렵인 1920년대 말에 태어났다. 미국은 10년이 넘는 대공황의 재앙에 시달렸어야 했는데, 물론 나는 어린 나이에 대공황을 겪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났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다섯 살 때 빵을 구하려고 장사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저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는 거예요?”하고 부모님에게 질문했던 기억은 남아 있다. 마틴 루터 킹이 성인이 되어서 자본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지니게 된 것은 이런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마틴 루터는 애틀랜타 시 오번 가에서 태어났는데, 애틀랜타 조지아의 주도로 남부지역의 관문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마틴 루터에게 오번 가는 집이나 다름없다. 어려서부터 다녔고 지금은 공동목사로 일하는 에버니저 침례교회도 오번 가에 있다. 현재 일하는 SCLC 사무실 역시 오번가에 있다. 마틴 루터는 애틀랜타에서 공립학교를 졸업하고 애틀랜타 대학 부설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런데 그 학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2년 만에부터 T. 워싱턴 고등학교로 전학해야 했다. 마틴 루터가 내어난 동네는 서민층에 속했으며, 재산가도, ‘상류계층속하는 사람도 없었다. 부유한 흑인들은 대부분 헌터 힐이라는 다른 지역에 살았다. 동네 주민들은 순박하고 검소하며 지나치게 가난한 사람도 없었다.

 

미국의 인종평등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힘썼다. 물론 희생된 목숨도 있었지만 그들 덕분에 지금의 미국이 있을 수 있으니 그들의 죽음이 헛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다. 마틴 루터 킹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해방을 선택하고 해방을 위해서 죽게 된다면 후세에 있을 꼬마 아이들은 우리들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고마워 할 것이다. 그러니 의지를 가져라.”라고 말이다. 백인들의 물대포에 겁먹은 흑인들에게 한 말이다.

 

백인들은 자신들의 경지를 더럽힌다는 관념을 가지고 흑인들은 탄압하고 학살했다. 하지만 하나로 뭉쳐진 흑인들은 의지를 굽히지 않고, 더욱 승리의 찬가를 부르며 나아갈 뿐이다. 그들의 곁에는 자신들에게 무한한 의지를 불어넣어준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목사님이 암살 당하셨을 때는 모든 흑인들이 거리로 나와서 그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고 자신들의 앞날을 밝게 만들어준 것에 고마워했다. 만약에 그가 겁먹고 도망치려 했다면 아직도 흑인들은 백인들의 지배 아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언젠가는 그들 가운데 지도자가 나타나서 모두를 해방시키겠지만 말이다. 이것을 보면 역사는 오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이미 준비돼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