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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세도정치) 순조시대 세도정치의 변질, 악랄함

MasterJo 2016. 10. 20. 16:39

정조가 죽고 난 후에는 조선에 엄청난 일들이 마구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라의 귀족들은 순식간에 부패했고, 백성들은 등골이 휠 정도로 일해도 먹고 살지 못했고, 마치 고려시대 후반과 같은 상황으로 변했다.

 

정조가 급작스럽게 죽은 뒤 순조가 11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를 계승했다. 영조의 계비였던 정순왕후는 수렴청정을 했다. 정순왕후는 노론벽파 쪽의 인물이었던 만큼 정조대의 업적을 일시에 무화시켰다. 장용영을 혁파했는가 하면, 남인을 몰아내기 위해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가해 신유박해 등을 일으켰다.

 

이때 수만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받았으며, 실학파인 정약용, 이승훈, 이가환 등도 천주교도로 몰려 사형당하거나 유배형에 처해졌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3년 만인 1803년에 끝난 뒤 권력은 순조의 장인 김조순에게로 넘어갔다. 이후 60년간 안동 김씨 집안의 세도정치가 계속되면서 조선의 개혁은 정체되었다. ‘세도정치’ ‘세도가라고 할 때의 세도는 본래 세도지임에서 비롯된 말이다. 세상의 도를 맡는 임무란 뜻인데, 정도 때의 홍국영이 그러했듯, 세도정치란 원래 왕권이 약하고 어느 한 당파의 권력이 비대할 때 왕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특정한 인물을 신임하여 왕권을 강화시키는 방편이었다. 이럴 때 왕의 신임을 받는 인물은 특정붕당의 인물이기보다는 왕과 특별히 가까운 외척일 경우가 많았다. 이렇듯 붕당정치의 산물이었던 세도정치는 순조 이후 왕권이 급격히 약화되면서, 안동김씨라는 특정집안의 권력독점으로 그 성격이 완전 변질되었다.김상헌의 후손인 김조순의 안동 김씨집안은 순조, 현종, 철종의 360년간 왕실보다 더 막강한 권세를 휘둘렀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말처럼 안동김씨 집안의 막강한 세도역시 절대부패를 가져왔다. 붕당간의 정치투쟁이 치열했던 전댕[도 노론의 일당지배로 인한 폐해가 있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소론이나 남인이란 견제세력이 있었다. 그러나 세도정치 연간에는 모든 권력이 이들 세도가의 손아귀에 있었다. 순조 때는 김조순이 영안부원군, 철종 때는 아들 김과근이 영의정, 동생 김수근이 이조판서, 손자 김병기가 좌찬성을 맡는 등 이들 일가가 병권, 인사권, 재정권까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다. 남들이 볼 땐 그래 너희들 끼리 다 해먹어라.”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권력독점이 심했다. 과한 권력 때문에 안동김씨 집안은 여러 가지 변명을 대면서 백성들을 수탈했고, 거부할 시 폭행 역시 서슴치 않았다. 이들이 왕에게 대하는 행동에는 당연히 성리학적 군신관계 따위는 볼 수 없었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안동김씨 집안의 횡포는 도저히 국가에서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을 넘은지는 오래였지만 누구하나 이것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왕 역시 허수아비에 불과했다.”라고 말이다. 60년간 이런 막되먹은 정치를 하면서 백성들의 농민봉기가 일어났으면 일어났지 귀족들은 막는 척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가 보는 역사에는 어떻게 보면 왜곡된 부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꿰꿇고 진짜 그 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파악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곧 바로 왜곡되지 않은 순도100%의 역사를 책으로 담아 많은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