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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마틴 루터 킹) 그의 시작

MasterJo 2017. 4. 14. 17:59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나? 아마도 처음에는 다들 꺼려할 것이다. 말도 안통하고 심지어는 이질감을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그 사람에게 잘 대해줄 수 있나? 속마음에 대고 물어 보길 바란다.

 

미국에서는 한 때는 엄청난 흑백차별이 유행했었다. 흑인들은 언제나 천한 취급을 받으면서 살았고, 백인들은 언제나 고급적인 삶을 살았다. 흑인들 입장에서는 매우 화가 나고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빛과 같은 존재가 나타났는데, 그분의 이름은 바로 마틴 루터 킹이다.

 

마틴 루터 킹은 대공황이 시작될 무렵인 1920년대 말에 태어났다. 미국은 10년이 넘는 동안 대공황의 재앙에 시달렸다. 당시 어렸던 루터는 어린 나이에 대공황을 겪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다섯 살 때 빵을 구하려고 장사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저 사람들은 무얼 하는 거예요?” 부모님께 물었던 기억은 있다고 말한다. 그 시절은 백인이 아이스크림을 사면 대접만한 용기에 담아서 주고 흑인이 아이스크림을 사면 종이컵에 조금 담아서 주던 시절이다. 얼마나 부득이 한지 모르겠다. 마틴 루터 킹은 애틀랜타 시 오번 가에서 태어났다. 애틀랜다는 조지아의 주도로 남부지역의 관문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루터에게 오번 가는 집이나 다름없다. 어려서부터 다녔고 한 때 공동목사로 일했던 에버니저 침례교회도 오번 가에 있다. 루터는 애틀랜타 공립학교를 절업하고 애틀랜타 대학 부설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런데 그 학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2년 만에부터 T. 워싱턴 고등학교로 전학해야만 했다. 루터가 태어난 동네는 서민층에 속했다. 재산가도, ‘상류계층에 속하는 사람도 없었다. 부유한 흑인들은 대부분 헌터 힐이라는 다른 직역에 살았다. 동네 주민들은 순박하고 검소하며 지나치게 가난한 사람도 없었다. 주민들을 굳이 분류한다면 보통 수준의 소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 동네는 범죄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건전한 마을이었으며 사람들은 대부분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다. 루터는 태어날 때부터 건강 체질었다. 몸이 아픈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를 정도로 건강하게 자랐다. 물론 정신적인 면에서도 건강했다. 어려서부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다소 조숙했으니, 루터는 핏줄을 통해서 건강이라는 타고난 축복을 받은 사람인 것 같았다. 이때는 아무도 몰랐다. 이 아이가 백인들에게 억압 받던 흑인들을 자유롭게 만들어줄 사람인지를, 그가 사람들에게 아주 위대한 존재가 될 인물인지 말이다. 그저 건강하고 흑인들의 타고난 피부에 평범한 아이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의 집안 분위기는 화목했다. 부모님은 훌륭한 분들이셨다. 루터는 두 분이 언쟁을 벌이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적을 본 적이 없었다. 이러한 집안 분위기는 그의 종교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집에서 태어난 그는 흑백차별을 직접 두 눈으로 마주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몰랐다. 현실이 이렇게 잔혹한지를 말이다. 그의 눈에 모든 것이 비춰지는 순간 그는 이것은 잘못되었다.’라는 것을 한 순간에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시 미국의 사람들은 말한다. “마틴 루터와 같은 사람이 미국에 다시 태어난다면 난 그의 연설을 꼭 들으러 갈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는 언변이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단 한 번도 위협과 협박에 진 적이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위대하다고 인정하는 순간은 별로 없다. 단지 그 사람이 진심으로 한 사람의 눈에 위대하게 비춰졌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은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진실의 거울이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