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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개막) 조선시대의 문, 드디어 열다. 본문
결국에는 고려를 뒤엎어야만 했고, 그 개혁에는 이성계 장군이 나서야만 했다. 그 당시 고려는 매우 재정이 힘들었던 상황이었다. 권문세족에 의해서 말이다. 결국은 정도전과 손을 잡고 개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성계가 개혁을 하자고 마음을 먹은 시기는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위화도 회군 때였다. 최영과 우왕이 요동을 정벌하려고 모든 군사들을 모아서 요동정벌을 떠나기 시작했던 때였다. 하지만 위화도에서 많은 비가 내리자 강물이 불어났고, 최 영의 무리한 진입 때문에 여러 명의 군사들이 죽었다.
이에 고민하던 이성계는 강제회군을 명령하고 회군했다. 이때가 바로 조선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전설적인 순간이었다. 이성계는 그전에도 수 차례 회군을 허락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우왕과 최영 등 많은 인물들에 의해서 부결되고 말았다. 결국 6월 1일 개경에 도착한 정벌군은 최영군 1000명과의 내전에서 승리한 뒤, 우왕과 최영을 숙청하고 우왕의 아들을 왕위에 돌렸다. 바로 창왕이었다. 이제 권력은 회군세력에게 넘어간 셈이다. 그로부터 4년, 이성계가 공양왕으로부터 왕위를 선양받아 무혈역성혁명에 성공하기 까지, 이색, 정몽주 등의 온건개혁파와 이성계, 정도전, 조준 등의 급진개혁파 사이에는 목숨을 건 권력투쟁이 있었다. 또한 토지, 노비제도의 개혁을 어느정도의 강도로 하느냐의 문제와 함께, 역성혁명이냐 아니면 고려왕조 내에서의 개혁이냐를 놓고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을 벌였다. 결국 이 싸움의 근본적 개혁을 내세운 역성혁명파의 승리로 끝났다. 조선 왕조는 이렇게 열리고 있었다. 1375년 성균관 교관으로 재직중이던 34세의 정도전은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공민왕이 살해당하고 어린 우왕이 즉위하면서 정권을 잡은 이인임, 경복홍 일파는 다시금 친원정책을 펴고 있었다. 이색, 정몽주, 정도전 등 개혁적인 신진사대부들이 이에 반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때 보수파의 노회한 수장 경복홍은 묘수를 던졌다. 바로 정도전을 원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영접사로 임명한 것이다. 정도전이 영접사 일을 덥석 받아버리면 출세는 할 수 있으나, 자신의 정치적 노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인지라 개혁을 내새울 명분을 잃게 된다. 그렇다고 거부하면 명령불복종으로 파직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즉, 정치의 장에서 밀려나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정도전이 이성계와 손을 잡지 않았다면 개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백성들이 먼저 봉기를 일으켰을 테고, 이성계는 역사 속에서 지워질 수도 있었다.” 라고 말이다. 이성계는 정도전의 손을 잡은 것이 천리를 내다 본 선택이었다.
진정한 명장은 언제나 모두를 생각하고, 이성계 역시 그러했다. 흔히 “왜군을 무찌르고 성이 이씨인 장군이 누굽니까?”하고 물어보면 이순신 장군을 말하겠지만 아니다. 이순신 장군의 원조가 바로 이성계 장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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