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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조선시대) 한글의 탄생, 세종대왕의 인생

MasterJo 2016. 10. 13. 15:46

우리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자,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자를 만든 장본인, 세종대왕은 어떤 인물 이었을까? 그는 학구열이 매우 뛰어났으며, 인재와 과학자에게 근 특혜를 쥐어줄 정도로 나라를 발전시키기를 원했던 분이다.

 

1998주간동아10명의 역사학자와 함께 한국사 1,000년을 만든 100인을 선정한 바 있다. 여기서 1등은 세종대왕이었다. 이빡의 다른 조사에서도 세종은 최고의 인물로 선정되고 있다. 우리나라 화폐 중 만 원짜리 화폐에는 세종의 영정이 들어가 있다. 이렇듯 세종은 한국사상 최고의 인물로 숭앙되고 있다.

 

세종은 자신이 통치하는 동안 정치적 이유를 띤 옥사를 한번도 일으키지 않고 원만하게 국정을 이끌어나갔다. 그는 정치, 국방, 외교, 문화 등의 전 분야에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광개토 대왕, 광종, 정도 등의 카리스마가 강했던 군주들과는 달리, 세종대왕은 신하들의 의견을 끝까지 듣고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을 도출해내는 민주적 리더십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과연 이런 원만하고 조화로운 스타일의 인물에게서 불행의 그림자를 찾아낼 수 있을까? 세종은 개인적으로 지병을 달고 살았다, 당뇨와 백내장, 영양실조, 과로 등의 다양한 병이 있었다. 하지만 몸이 이런 와중에도 하루 18시간 이상은 반드시 자신의 업무를 신하들에게 맞기지 않고 자기 스스로가 해결했다. 왕이라면 나의 할 일을 신하들에게 시킬 수도 있지만 세종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20대부터 두통이 있었지만 일을 했고, 온 몸에 종기가 생기고, 나이가 들고 몸이 늙기 시작하면서 온갖 병이 몸에 찾아왔지만 버텨냈다. 솔직히 조선시대의 의료라고는 한방치료가 대부분이었는데, 보통 다른 왕들은 한 두 가지의 질병을 앓기 시작하면 금새 심해져 빠른 시기안에 명을 다했다. 하지만 세종은 끝까지 버텼으며, 당시 우리 같은 평민들이 글을 알고 깨우치고, 말하기를 원했다. 그렇기에 언제나처럼 학문을 익혔으며, 개발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며느리 복도 없었는데, 첫 번째 세자빈 휘빈 김씨는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세자가 자신을 찾지 않자 압승술이란 민간비방을 썼다. 압승술이란 남편이 좋아하는 여자의 신발을 태워 가루를 내, 그것을 술에 타 남편에게 먹이는 것이었다. 결국 이런한 행동이 들켜서 폐빈되고 말았다. 두 번째 세자신 순빈 봉씨는 낮술을 즐겨 마신데다, 소쌍이란 여종과 동성애에 빠져 동침을 일삼다가 세종에게 들켜서 폐빈되고 말았다. 시아버지로서 밝히기도 부끄러운 이런 음행을 알고 난 뒤 세종은 마음고생 끝에 폐빈해야 했다. 군주로서 위대했지만 인간으로선 한없이 불행했던 세종, 하지만 세종은 이런 인간적인 불행을 딛고 조선의 국가체제를 완성했다.

 

나는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세종만큼 힘들지 않았다면 그 말을 다시는 하지 말아라.” 세종은 인간으로써 가질 수 있는 고통이란 고통은 전부 가진 유일한 한 사람일 것이다.

 

세종은 처음부터 남다른 싹을 틔웠다. 어릴 적부터 셋 째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놀기보단 책을 좋아했고, 아버지 였던 이방원이 어짜피 넌 왕이 될 수 없다. 차라리 놀아라라고 직설적으로 말을 했지만 어릴 때부터 지병이 생길 때까지 책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