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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물산장려운동) 모두 같이 힘내자! 물산장려운동

MasterJo 2017. 2. 20. 19:06

 

이때 사람들이 일으킨 운동이 바로 조국의 제품을 사용하자라는 푯말을 단 물산장려운동이다. 이 운동은 19226월 평양에서 조만식 등 7-여 명의 유지들이 조선물산장려회를 설립함으로써 출발했다. 그러나 한 해 전인 1921년부터 이미 운동을 위한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었다. 이 무렵 조선총독부는 산업조사위원회를 발족시켜 조선에서의 산업정책의 뼈대를 세우려 했다.

 

회사령 철폐 이후 일본 자본의 공세 앞에 곤란을 겪고 있던 토착자본은 이를 좋은 기회로 활용하고자 했다. 이들은 조선산업대회를 열어 총독부에게 조선인 본위의 산업정책을 세워줄 것을 청원했다. 친일파인 박영효까지 영입하여 총독부와의 교섭력을 높이려 하는 등 이 대회에 거는 토착자본가들의 기대는 자못 높았다. 그러나 이들의 기대는 곧 물거품으로 변하고 마는데 총독부가 청원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것이다. 물산장려운동이 본격화된 결정적인 계기는 또 하나 있는데 바로 19234월부터 조선과 일본 사이에 관세가 철폐되고 무역이 자유화되었던 것이다. 토착자본가들에겐 소나기 앞에 우산이 벗겨진 꼴이었다. 이 때부터 토착자본은 물산장려운동을 자구책으로 삼아 위기를 돌파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세계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장의 빛바랜 사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인도 독립의 지도자 간디가 헐벗은 차림으로 물레를 돌리고 있는 사진 말이다. 이 사진은 인도인들을 감동시켜 인도판 국산품애용운동인 스와데시의 광법위한 전개에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이제 조선에서도 비슷한 장면들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잡지 동명에는 설태희의 가가호호 물레와 베틀을 다시 돌려달라는 글이 기고되고, 조선청년연합회는 표어를 모집하여 내살림 내 것으로”,“조선 사람 조선 것이라는 구호를 물산장려운동의 슬로건으로 선정했다. 1922년 말에는 연희전문학교에서 자작회가 결성되고, 1923년에는 서울에서도 조선물산장려회가 설립됐다. 물산장려운동이 조직적 운동으로도 분출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같이 힘을 모아주는데 못할 것이 없는게 당연하다. 한 명의 손을 다른 한 명이 잡아 두 명이 되고 그 두 명의 손을 다른 두명이 잡아 이룬 결과 였다. 조선의 경제가 점점 기울고 있었던 마당이었지만 물산장려회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힘을 써준 덕에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모여서 생긴 역사는 언제나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사람이 없는 역사는 언제나 허무함만 남는다.”라고 말이다. 허무함이 생겨나면서 결국 그 허무함은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요즘은 많은 것들이 발달되어있다. 기술도, 의학도, 사람도 말이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기에는 많은 시간들과 위에서 말한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모두가 만든 것이고, 그 모두가 만든 것을 이제는 다시 한 번 모두가 대한민국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할 때이다